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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억수로 내리는 날, 42.195km 춘천 풀마라톤 완주를 하다!

letzgorats 2024. 5. 18. 18:54

 

이번 포스팅에서는 내가 42.195km를 완주한 경험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인식표

때는 바야흐로 2018년 10월 28일 일요일이었다. 이 때는 내가 군인으로서 복무를 하고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는데, 군인으로서 일요일에 굳이 마라톤을 뛰러 나가는 이유는 휴가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때 한참 연대장님이 바뀐 시점이어서, 춘천 마라톤에 나가서 좋은 기록으로 풀코스를 완주한다면 휴가를 준다고 하셨다.

42.195km를 3시간 안에 들어온다면, 휴가 3일을 줄 것이고, 4시간 안에 들어온다면, 휴가 2일을 주고, 5시간 안에 들어온다면 휴가 1일을 준다고 하셨다.

 

내가 나온 78연대 3대대는 예비연대에다가 예비대대여서 육군이 할 수 있는 훈련을 다 받아야 했다. 때문에, 밖에서 훈련하는 날이 정말 많았고 거의 훈련을 나가고 그 다음주는 정비를 했다가 다시 그 다음주는 훈련을 나가는 등의 군생활이 계속되었다. 밖에서 자는 날이 정말 많았다.

 

그래서, 나에게는 휴가가 매우 절실했다. 특히 신병휴가는 6월 현충일을 껴서 나갔었는데, 6월이 훈련이 엄청 많다는 이유로 강제로 나가게 된 셈이다. 그렇게, 나는 원하지 않는 휴가를 미리 나갔어야 했고 그 다음 휴가는 최대한 붙여서 내가 원하는 날짜에 나가기로 마음 먹는다. 그렇게 정신없는 3박 4일 신병휴가 이후로 5개월동안 휴가를 나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21개월동안 복무하면서 휴가를 50일정도 나온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는 휴가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군복무 시절, 이렇게 휴가를 딸 수 있는 것이면 최대한 하려고 했다.


 

각설하고, 이 때 이 마라톤을 굳이 안 나가려는 병력도 많았는데, 일요일 바로 다음 날인 월요일부터 바로 진지공사가 시작되는 주이기 때문이였다.

진지공사 사진 (출처: 나무위키)

 

진지공사는 1주일 동안 밖에서 텐트를 치고 씻지도 못하고 일만 오지게 하는 훈련이다. 게다가 돌아올 때는 행군으로 돌아와야 했다. 우리 중대는 파로호에서 진지공사를 진행하곤 했는데, 산을 많이 올라가야 해서 정말 진이 빠지는 훈련이기도 했다. 

 

다음날에 진지공사 첫 날이라서 군장을 메고 저 멀리 떠나고, 1주일동안 막사에 못 돌아오면서 떙볕에서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씻지도 못하는데, 추가 훈련이 있으면 해야 한다? (실제로, 겨울 진지공사 때는 지뢰설치 연습을 시킨 적도 있다. 얼어버린 땅을 어떻게 삽으로 파냐...이때 정말 고생했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도 마라톤을 하러 가는게 맞나? 라는 생각이 대다수였다.

게다가 이 날은 춘천에서 엄청나게 비가 많이 온 날이였다. 물론 마라톤을 시작할 때 쯤은 비가 하나도 안 왔지만, 중반부터 정말 엄청난 장대비가 쏟아졌다. 그래서 실제로 감기에 걸린 병력들도 많았다.

2018년 10월 28일 날씨

 


내가 마라톤을 하자고 결심한 이유는 단지 휴가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언제 42.195km 를 뛰어보겠나?" 라는 생각말이다. 

살면서 42.195km 를 자처해서 뛰는 경험을 쉽게 할 수 있을까? "이번이 아니면 평생 그런 경험을 못할 수도 있겠다...!"

그래 뭐 해보자! 재밌을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이 또한 나에게는 도전인 동시에 나에게 이 경험이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라톤에 참가하는 병력들은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했다. 이 때 탄약고 근무였나 불침번 근무가 새벽에 있었고, 잠을 얼마 못자고 일어나자마자 활동복으로 갈아입고 활동화를 신고 운동장으로 집합했다. 대대에서 마라톤에 참여하게 된 병력들이 큰 버스를 타고 춘천으로 향했다. 너무 졸리기도 했고 문득 괜히 했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도착과 동시에 그 생각은 사라졌다. 군인으로서는 너무나 오랜만에 일반인들을 많이 보게 된 순간이기도 했고, 정말 활기가 넘치는 분위기와 그 마라톤 자체의 축제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풍선이 날라다니고 심지어 방송사에서 주최하는 마라톤 대회여서 아프리카 선수들도 연습하는 것이 보이고, 여러 각종 부스에서 행사도 하고 있었다.


활기찬 분위기 속에서 나는 기록 미보유자 그룹에서 출발을 시작해야 했다. 마라톤은 사람이 워낙 많기 때문에, 'A그룹'부터 '기록미보유자' 그룹까지 각 그룹마다의 출발시간이 달랐다. 나는 A그룹에 비해 30분 정도 늦게 출발했다. 통과선이나 일정 km 마다 지나는 발판에 센서가 있고 마라톤 스티커에 센서를 달고 뛰기 때문에 정확히 시간이 측정되는 시스템이었다. 

 

뛰면서 들었던 생각은 감사함이었다. 정말 그 분위기와 활기참이 너무너무 좋았다. 비록 활동복을 입고 빡빡머리에 육군모를 눌러쓰고 가격비싼 런닝화가 아닌 보급 활동화로 뛰고 있는 군인 신분이라도 이렇게 같이 대회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다. 더구나 정말 감사했던 것은 그 때 그 감정이다.

 

나는 지인들에게 "마라톤은 꼭 뛰어보면 정말 황홀한 감정을 느낀다"고 말하곤 한다. 정말이다. 뛰어보지 않으면, 이 감정을 모른다. 생전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응원하고 있고, 여러 봉사자분들께서도 웃어주고 응원해주는 상황 속에서 어떠한 목표지점으로 달려가는 그 순간이 감동이 몰아칠 것이다. 나는 그 때 너무 좋았다. 너무 감사했다. 나에게 응원해주며 "완주하세요!"라고 중간에 에너지 포션과 물을 건네는 학생들, 거리에서도 응원을 하면서 지켜보는 많은 사람들, 같이 한 지점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한계와 경쟁하며 달려나가는 여러 참가자들이 모두 다 하나가 되는 연대를 크게 느꼈다.

 

뛰다보면, 정말 중간중간에 볼일을 많이 보는 사람들이 엄청 많다. 그 순간은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다. 똑같이 힘든 것을 알기에, 인간의 본능을 그대로 인정해주며 전혀 이상하게 대하지 않는 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있기에 당연한 순간에 일부일 뿐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뛰었다. 그 황홀감을 가지고 벅참에 힘입어 계속 뛰었다. 

 

중간중간에 손목에 풍선을 달고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는 분들이 계셨는데, 처음에는 무작정 4시간 안에 들어간다는 목표를 가지고 "4:00" 가 써져 있는 풍선이 나올 때까지 찾았고, 그 풍선이 나올때 그 풍선을 제쳤다. 그래야 내가 나중에 지쳐서 느려질 때, 4시간 안에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계속 달렸다.

 

23.5km 지점까지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달렸다. 중간중간에 앰뷸런스에 실려나가는 참가자분들도 봤고, 쓰러지는 분들도 더럿 봤다. 그리고 애초에 걸으면서 대화하시는 분들도 계셨고 자신과의 싸움을 나처럼 계속 하시는 분들도 많이 보였다. 23.5km 지점까지 안 쉰 이유는 나도 내 한계를 경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나 오래 뛸 수 있는가가 궁금했다. 추가로, 좋은 기록으로 완주하고 싶기도 했다. 나름 3km를 잘 뛰는 입장에서 부대원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내가 멈춘 이유는 바로 아킬레스였다.

 

아킬레스 부분이 너무 저릿저릿했다. 멈추지 않으면 정말 끊어질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뜨거워지고 뭔가 이상한 느낌이었다. 한 발 한 발 내딜때마다 아킬레스건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고, 멈추지 않는다면 뭔가 문제가 생기겠다 싶어서 달리는 것을 멈췄다. 멈추자 마자, 근육이 쫙 올라왔고, 아직까지도 달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지속됐다. 런닝머신을 계속 타고 내려오면 아직도 달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 듯이, 내가 달리는 것을 멈췄는데도 난 아직 달리고 있었다. 진짜 신기했다. 동시에 아킬레스가 너무 아팠다. 어차피 4:00 기준 풍선이 내 뒤에 있으니까 좀 걸어도 된다고 생각하며 계속 걸었다. 다시 뛰려고  할 때면,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근육이 뛸 때마다 아팠고, 조금은 휴식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걸으면서 못봤던 풍경도 자세히 보고 템포를 조절했다.

 

비도 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4시간" 기준을 가리키는 풍선이 내 앞으로 지나갔다. 근데, 알고보니 그룹마다 기준 풍선이 달랐고, 내가 초반에 계속 따라가려고 했던 풍선은 C그룹 풍선이였다. 거의 준 선수들이 뛰는 그룹의 풍선을 계속 따라가려고 했으니 오버페이스가 나는 것은 당연했다. 아직 "기록 미보유자"그룹의 "4시간"기준 풍선이 안 보이니까 계속 걸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계속 걸었다. 비가 와서 서 너무 추웠다. 활동화에 물이 다 들어갔다. 젖꼭지도 계속 쓸리는데도 비가 오니까 따가웠다. 

 

말 그대로 나도 내 한계와 싸우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물이 들어오고 이렇게 비를 맞으면서도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이 상황이 즐거웠다. 진짜로 좋았다. 왜냐하면 우비를 쓰면서도 응원하는 사람이 보였고 열심히 뛰는 사람도 보였다. 다시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비가 계속 더 심해졌다. 하지만, 그 비는 나에게 더 뛰라는 촉매제 역할을 할 뿐이었다. 

 

첨벙첨벙 물을 밟으면서 비를 맞으니까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어릴 때 말고는 이런 폭우 속에서 순수하게 뛰어본적이 없지 않은가. 이 상황을 즐겼다. 도전하는 내 자신을 마음속으로 칭찬하면서 이런 불편함을 즐거움으로 승화시켰다. 그렇게 살짝살짝 뛰면 이제는 걸었던 시간이 너무 많았다고 생각해서 35km부터는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결승선이 나올 때까지 계속 뛰었다. 어느새 아픔은 잊고 다시 나와의 싸움을 즐기고 있었다. 너무 행복했다. 내가 너무 멋있었다.

 

특히, 결승선이 얼마 안 남았을 시점에는 오히려 더 힘이 났다. 사람들의 환호가 비 속을 뚫고 내 귀로 들어왔다. 계속 달렸다. 너무 좋았다. 힘들었지만 힘이 났다. 그렇게 결승선을 통과하게 됐고 나는 4시간 22분 35초의 기록으로 42.195km 를 완주하게 됐다. 


케냐 선수들이 세 명다 입상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마라톤이 끝나고 여러 선수들을 멀리서 보면서 바나나와 초코파이, 에너지 바 등이 담긴 완주자 팩을 가지고 동기들을 찾았다. 근데, 아무도 안 보였다. 그것도 당연한 것이 많은 인파 속에서 내 동기를 찾기란 쉽지 않았고 완주를 했는지도 모르고 얘네들이 어디있는지도 몰랐다. 우리는 군인들이라서 휴대폰도 없기 때문에 정말 총체적 난국이었다.

 

긴장이 풀리고, 달리기를 멈추니까 그제서야 추위가 나를 뒤덮었다. 젖꼭지에서는 피가 났다. 마라톤 선수들이 뛰다가 왜 저렇게 피를 흘리지 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그 부분이 쓸려서 까져서 살딱 피가 나고 있었다. 발 뿐만 아니라 전신이 힘들었다. 춥고 몸도 힘들고 비도 계속 왔다. 한 순간에 난 다시 춥고 아프고 외로워졌다. 

 

완주를 다 하면 어디역으로 모이라고 했는데, 그게 어딘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가야하는지도 몰랐다. 그저 그냥 도로 표지판을 보면서 역을 가리키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중간에 너무 추워서 어떤 천막 같은 곳에 들어가서 잠시 비와 추위를 피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동기 태훈이를 만나서 같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찾아다녔다. 비는 잠깐 멈췄지만 여전히 몸은 너무 힘들고 추웠다. 그렇게 춘천역 으로 아마 갔을 것이다. 

넓은 흙바닭에 78연대를 대표하는 버스가 보였고, 멀리서 보였지만 우리는 그곳으로 또 걸어갔다. 휴대폰도 없이 그렇게 찾은것이 다행이었고 얼른 막사로 돌아가고 싶었다. 동시에, 내일부터 시작되는 진지공사가 걱정됐다. "이 몸으로 어떻게 훈련을 하지?" 라는 생각과 동시에 "연대장님이 무슨 조치를 취해주시겠지?" 라는 생각으로 진지공사가 밀려나겠구나 하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생각이 든 것도 그럴것이, 나 를 포함해서 다른 병력들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다들 최소 감기는 걸렸고 몸이 안 성한 곳이 없었다. 나는 그냥 무엇보다 너무 추웠다. 그것뿐이었다. 발도 아프고 무릎도 아팠지만 당장 너무 추워서 진짜 감기에 걸릴 것 같았다.

버스에 도착하고서도 바로 출발하지 않고 남은 병력들이 올 때 까지 그 상태로 기다렸다. 모두들 추위에 오들오들 떨면서 막연하게 기다려야 했다. 그렇게 다시 몇 시간을 걸쳐서 막사로 돌아오게 되었고, 나는 중대에서는 두 번째로 빠른 기록으로 완주를 하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기록도 기록인데 휴가를 2일 받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하지만, 소대장님은 곧바로 내일 있을 진지공사를 얼른 잘 준비하자고 말했다. 게다가 마라톤 복귀 인원은 늦게 도착해서 씻으니까 거의 새벽에 잘 수 있었다. 몇시간 자지도 못하고 일어나야 했고, 그 상태로 나가면 1주일동안 막사에 못 들어오면서 산 속 텐트에서 지내면서 일과 훈련을 병행하는데 씻지도 못한 채로 있어야 했다. 내일이 두려웠다.


 

일어나니까 몸은 진짜 말이 아니었다. 정말 계단 하나도 못 내려갈 정도로 근육통이 심했고 확실히 몸이 아예 이상했다. 하지만 전투화를 신고 전투복을 입고 각종 진지공사를 위한 더플백을 메고 군장을 메고 k-3 총을 짊어진 채로 육공에 탑승했다. 정말 연대장님도 대단한게 부임한지 얼마 안되어서 마라톤 인원에 대한 배려보다는 훈련을 더 중요시 여기셨다. 그렇게 똑같이 훈련하고 5일 후에 진지공사를 마치고 돌아 올 때는 또 행군으로 막사로 돌아왔다. 웬만하면 행군은 끝까지 하는데, 이 때는 정말 인간의 한계의 한계까지 갔던 기억이 난다.

 

갔다와서 거의 2주동안 계단을 못 내려갔다. 몸이 망가졌었다. 오히려 마라톤을 가서 결과적으로 휴가를 받았는데 마라톤을 갔다온 병력들이라고 차별을 해 줄 수 없다고 그 상태로도 일과와 다른 훈련은 계속되어야 했다. 이 경험은 정말 좋았지만 군대라서 정말 슬펐던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42.195km 를 뛰었던 그 순간, 마라톤을 경험했던 그 경험만큼은 정말 정말 소중한 추억이다. 나는 그 이후에도 하프마라톤과 10km 코스 등을 뛰기도 했는데, 42.195km 만큼의 벅참과 감동을 준 경험은 이것이 유일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도전해볼만하고 꼭 경험을 해봤으면 좋겠다. 

 

정말 인생에서 딱 한 번만 경험하고, 두 번은 해보고 싶지 않은 경험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한 번의 경험이 너무 짜릿하고 내 자신이 살아간느 방식에서도 많은 교훈을 주는 감사한 자산이 됐다.

어쩌면, 그토록 싫었던 군대가 아니었더라면 해보지 못했을 경험이었을 텐데, 아이러니하게 그러한 경험을 하게 해준 군대에게 감사를 느낀다. 더구나 그 때 42.195km 풀 마라톤 코스를 하겠다고 굳이 도전했던 내 과거를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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