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CI 대학교 출근 - Nikil Dutt 교수님 세미나
아침 7시, 조식을 먹고 랩실 출근 준비를 마친 뒤 호텔 로비에서 Said의 차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뉴스도 보고, 로비 데스크 점원과 아침 인사를 주고받으며 여유로운 아침을 즐겼다. 나는 늘 1그룹으로 출근했는데, 1그룹은 아침 9시까지 로비에 모이는 일정이었다.
아침 9시 20분쯤 DBH 주차장에 도착하면 각자 랩실로 향했다. 우리 랩실은 DBH 주차장 바로 앞에 있어 금방 도착할 수 있었지만, UCI의 아름다운 경치를 천천히 감상하며 걸어가는 다른 학우들이 부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랩실에 도착하면 멘토분들이 반갑게 맞아주었고, 우리는 곧바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날도 역시 우리 프로젝트를 영균이랑 같이 진행하며 각자 할당 task를 진행했다.
이 날은 오후에 Nikil Dutt 교수님의 세미나가 예정되어 있는 날이기도 했어서 조금 일찍 랩실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오전에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11시가 조금 넘었을 때, Said가 직접 공수해온 각종 음식과 음료 등을 차에서 내리는 것을 도왔고 세미나가 열리는 소강당 건물 1층에 세팅을 했다. 준비를 마친 뒤, 세미나가 열리기 전 다 같이 점심을 먹었다. 점심 메뉴는 닭다리, 샐러드, 과일 등이 있었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주변을 지나가는 사람들과 나눠 먹으며 가볍게 대화도 나눴다.
점심을 즐기던 도중 김준호 교수님이 나타나시기도 했는데, 김준호 교수님께서는 해당 기간에 안식년을 가지게 되었고 1년동안 어바인에 머무르며 쉬고 계셨다고 했다. 오늘 특별히 우리들을 보러 잠깐 들린 날이라고 하셨고, 수업에서만 마주했던 교수님이셨는데 미국이라는 타지에서 보니까 더 반가웠다.
정오부터는 Nikil Dutt 교수님의 세미나가 시작되었다. 교수님이 진행 중인 연구를 소개하고 중간중간에 질의응답을 이어가는 형식으로, 꽤 오랫동안 세미나가 진행되었다. 특히, 이번에 내가 속한 랩실이 Nikil Dutt 교수님 랩실이기도 하고 내 프로젝트의 지도교수님이시기도 해서 집중해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한 학우분은 정말 해당 분야에 관심이 있어서 많은 질문을 했는데, 뒤에서 Said가 굉장히 좋아하기도 했다. 그렇게, 1시간 30분으로 예정되었던 세미나였지만, 그 이상으로 진행이 되었고 2시간 넘게 세미나를 진행했었다. Nikil Dutt 교수님의 세미나의 공식적인 Q&A 세션도 끝났을 때는 아무도 소강당을 나가지 못했다.
프로그램 디렉터 Said는 모든 학우분들에게 “Aha!”포인트가 매번 있어야 한다면서,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오늘 세미나를 보고 느낀 생각이나 깨달은 점 등을 자유롭게 공유하는 시간을 가지자고 했다. 평소 친근한 모습의 Said 였지만, 이 순간만큼은 디렉터로서 진지한 모습을 보여줘서 살짝 긴장되기도 했다.
이 때 소강당에는 Said와 다른 학우분들 그리고 김준호 교수님 등이 남아계셨다. 교수님께서 "저도 이 소강당에서 못 나가나요?" 라는 뉘앙스로 분위기를 좀 풀었고, 실제로 중간에 학우분들의 소감과 느낀점 등을 경청하다가 중간에 나가셔야 해서 김준호 교수님께서도 소감을 영어로 말씀하시고 조언을 해주시며 나가셨다.
서로의 생각이나 느낀점을 영어로 말하며 공유하는 시간은 솔직히 조금 떨리고 두려웠다. Nikil Dutt 교수님의 세미나에서 연구 주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있었고, 몇몇 학우분들은 교수님과 관련 질문을 주고받으며 꼬리에 꼬리를 더해 대화를 이어가나는 모습이 인상적이면서도 살짝 위축됐기 때문이다.
'Aha 포인트'를 공유하는 시간에도, Said가 랜덤으로 지목할 때마다 학우들은 너무나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소감을 말해 놀라웠다. 나도 내 나름대로 머릿속으로 어떤 말을 해야할지 키워드를 정리하며 소감을 생각했었다. 사실, 세미나의 내용을 정말 경청했는지는 소감의 깊이에 따라 티가 날 것 같았기 때문에 단순한 형식적인 느낌을 말하지 않고 내가 어떤 부분에 대해서 내가 그렇게 느끼게 됐는지 구체화를 하기로 정리했다.
그런데, 이 때 미국에서 처음으로 당황스러운 순간을 경험했다. 머릿속으로 준비한 말을 차분히 이어가던 중, 내가 사용한 "foreigner" 라는 단어에서 Said가 갑자기 말을 끊었다. Said는 그 단어가 좋지 않은 말이라며 주의를 주셨고, 한 번만 그 단어를 더 언급하면 이번주 금요일에 있을 바베큐 파티때, 요리를 다 시켜버리겠다는 장난 섞인 소리를 하시기도 했다. 하지만, Said의 표정은 굉장히 진지하셔서 많이 당황했었고 분위기가 좀 이상해지진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나는 단순히 '외국인'이라는 뜻에서 사용을 한 단어였지만, Said는 이를 뭔가 진지하게 '외부인'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내 의도와는 다르게 상황이 흘러간 순간이었다.
내 의도는 "이번 프로그램에서 많은 문화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는 부분을 말하려던 것이었지만, Said가 바로 "Who is foreigner?" 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순간 당황해서 "Native Speaker or People who speak English and People who are different from us" 라고 답했지만, 뒤늦게 그 표현이 적절치 않았음을 깨달았다.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Said는 내가 말한 부분에서 foreigner를 "외국인"이라고 받아들이지 않고 내가 마치 영어를 하는 사람들을 "외부인"으로 말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 듯 했다. 그러니까 뭔가 내가 '영어를 쓰면서 다양한 환경에서 온 사람들'을 마치 배척하고 선을 긋는듯한 뉘앙스로 이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물론 정말 당황해서 말한 "Native Speaker or People who speak English and People who are different from us"라는 답변은 적절하지 않았다. 글로벌 환경에서, 저렇게 말한 것 자체가 foreigner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아니기도 하고 뉘앙스도 어색했다. 하지만, 처음으로 Said 앞에서 잘 말해보려던 내 의도가 완전히 빗나간 상황이라 아쉬움이 컸다. 순간 얼굴이 붉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최대한 티를 안 내려고 노력했지만 아마 당황한 기색이 드러났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빠르게 한국말로 해명을 할 수도 없기에, Said가 진지하게 계속 얘기해주는 것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내가 하고싶은 말은 끝까지는 못하였고 Said가 날 안 좋게 생각할까봐 걱정도 생기기 시작했다. 아직 프로그램 초반이라 더 신경이 쓰였다. 그 순간이 계속 마음에 남아 나중에 몇몇 친구들에게 상황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친구들은 내가 했던 말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며, Said의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보다는 그냥 넘겨도 된다고 했다. 아무래도 3시간 가까이 진행된 세미나의 후반부라 그 순간이 다른 친구들에게는 기억나진 않을 수 있지만, 나는 내심 계속 그 순간이 마음에 걸렸고, 이렇게 또 문화차이를 배우게 된 것 같았다.
세미나의 'Aha 포인트'를 말하는 시간이 모두 끝나서 집에 갈 때쯤, 나는 Said앞에서 적극적인 태도로 짐 나르는 일을 돕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쓰기도 했다. 나중에 구글링을 통해서 조금 찾아봤는데, foreigner 라는 단어 자체가 "이방인, 겉도는 사람" 등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어서 조심하라는 글을 찾았다. 이런 세세한 문화차이도 배울 수 있었고, 앞으로는 이런 문화적 뉘앙스를 더 신경 써야겠다고 느꼈다. 영어를 더 많이 말해보고 체화하는 연습이 필요하겠다고 다짐하는 하루였다.
호텔로 돌아와 로비에서 친구들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했다. 흘러나오는 뉴스를 보며 이야기 나누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영어에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이며 영어에 노출되는 환경을 즐길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 날은 내 마지막 학기를 위한 수강신청 날이기도 했다. 미국에서 한국의 치열한 수강신청 경쟁에 참여하기란 쉽지 않았지만, 각자만의 방식으로 도전했다. 나는 노트북을 로비로 가져와 수강신청 준비를 마쳤다.
이 때 나는 막학기 6학점만 들으면 되는 상황이라 부담은 크지 않았지만, '소프트웨어 디자인 패턴'이라는 전공과목은 꼭 듣고 싶었다. 인기 과목이라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어 약간 긴장되었다. 또한, 취업 준비와 함께 공연을 보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공연줍기'라는 자유교양 과목도 장바구니에 넣었었는데, 이 또한 경쟁이 치열한 과목이었다. '3D프린팅창의메이커스' 라는 과목까지 총 9학점을 장바구니에 담았었고 수강신청을 준비했다.
미국에서 진행한 대학교 수강신청하기 결과는 대실패였다. 세 과목을 모두 놓쳤고, 이게 서버 문제인가 하며 그러려니 했지만, 노트북도 아닌 휴대폰으로 올클을 성공한 한정이를 보며, 수강신청도 결국 피지컬 싸움이라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다. 문제는 서버가 아니라 느린 내 손이었다.
어차피 2차 신청기간도 있고 정정기간이 남아 있었기에, 수강신청 실패에 대해서는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다. 그렇게 수강신청을 마무리하고 오늘 하루종일 프로젝트 하랴 세미나 들으랴 긴장 속에서 하루를 보낸 듯해서 룸메랑 맛있는 걸 좀 먹자고 했다.
방에 간단한 키친이 있었지만, 후라이팬은 하나뿐이라 거창한 요리를 하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았다. 냉장고를 뒤져보니 고기, 버섯, 김치, 마늘 정도가 있어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요리를 해서 맛있게 먹었다. 후식으로는 아침 조식 때 챙겨온 사과를 먹었는데, 깔끔한 마무리가 되는 저녁식사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시차 적응이 완전히 되지 않아 밤 산책을 종종 나가곤 했다. 이날은 다음 날 2그룹으로 출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룸메이트인 재오와 영균이와 함께 자정을 넘긴 시각에 밤 산책을 나섰다. 미국에서는 밤에 돌아다니는 것이 위험하다고들 하지만, 어바인은 안전하기로 유명한 지역이라 걱정 없이 걸을 수 있었다. 동네는 조용하고 깨끗해서 오히려 산책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었다.
자정이 넘어 도로는 한산했고, 산책 중에 만난 사람이라고는 차 안에서 음악을 틀고 있던 두 명뿐이었다.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공원에 들러 조용히 걸었는데, 스프링클러만 작동하고 있을 뿐 인기척은 전혀 없었다. 어바인의 한적함과 평화로움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밤 산책을 마치고 로비로 돌아오니 새벽 1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로비에서는 동국이가 부족한 부분을 공부하고 있었다. 아마도 모두들 시차 적응 중이었는지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이 새벽 산책은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하루 동안 신경 쓰였던 일들을 잠시 잊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덕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내일부터 다시 프로젝트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도 재충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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