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23년 1월 증권사에서 일을 할 때 쯤, 학자금 대출금과 카카오뱅크 대출금도 갚아야 했기에 한창 바쁜 시기였다.
일을 하고 있었기에 정기적으로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것은 부담이 됐던 터라, 때마침 "급구"라는 어플을 통해서 단기알바를 많이 알아볼 수 있었다.
정기적인 아르바이트는 쉽게 일을 그만두면 안되지만, 이런 단기알바는 말그대로 단기알바이기 때문에, 점주입장에서도 부담이 덜했고 내 입장에서도 장기적인 아르바이트보다는 시급이 높기도 한 단기알바를 찾아나서는 것은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여의도에서 일이 끝났기 때문에, 주변에서 바로 일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12시 55분 회사 점심시간에 어플을 둘러보던 중에, 마포역에 고깃집 "월화식당 본점"에서의 구인공고를 보고 바로 메시지를 보냈다. 다만, 17시 30분부터 구인을 하는 것이었는데, 그 당시 증권사 퇴근시간이 17시 30분에서 18시 사이에 끝나서, 바로 가면 18시쯤에 어떻게든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메시지를 보냈다.
감사하게도, 괜찮다고 하셔서 퇴근을 하자마자 집 반대 방향인 공덕역으로 향했다.
18시까지 약속을 지켜야 했기에, 서둘러 뛰었고 한 5분전에 "월화식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총 2층으로 된 식당이었는데, 워낙 바쁜 시간대라 사람들이 1층에는 꽉 차있었다. 모두들 바빠보였지만, 가장 윗사람처럼 보이는 직원분께 급구알바를 통해서 왔다고 말씀드렸다. 1층은 현재 손님이 꽉 찼고 2층은 18시부터 오픈이라 2층으로 가면 된다고 말씀해주셔서 앞치마를 건네받은 후,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부점장 느낌의 아저씨 분이 한 분 계셨는데, 내 모습을 보고 손님인 줄 아셨나보다.
"저희 2층은 6시부터 오픈이라서 조금만 대기해주세요!"
당시 나는 퇴근하고 바로 온 터라 세미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고 있었다. 누가봐도 직장인이 퇴근한 후에 고깃집으로 온 손님이었는데, 급구 알바를 하러 온 알바생인줄은 모르셨을 것이다.
"아 저 오늘 급구알바 하러 온 아르바이트 생입니다!" 하고 큰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이 때는 내가 생각해도 뭔가 에너지가 넘쳤다. 내가 마음에 드셨는지 투 잡하는 거냐고 물어보시면서 대단하다고 칭찬을 많이 해주셨다. 알바를 많이 해봤을 것 같다고 오늘 잘해보자고 힘도 주셨다. 퇴근을 했지만, 뭔가 처음으로 이렇게 바로 투잡에 뛰어든 날이라 굉장히 의욕이 앞섰고 설렜다. 나의 알바실력을 보여주리라. 목소리도 크게 하고 재깍재깍 알아들으려고 노력했고 업무 동선과 세팅하는 순서라든지 어떤 메뉴에 따라 어떤 게 나가야 하고 뭘 해야 하는지 확인하고 배웠다.
사실 서빙은 경력자 입장에서는 다 똑같다고 생각했지만, 호프집이 아닌 고깃집은 처음이라 할 게 꽤 있었다. 그리고 부점장님은 고기를 올려드리면서 멘트 하는 것까지 하라고 하셔서 멘트도 외워야 했다. 우선, 각 테이블 번호부터 외우기 시작했고, 벨 소리가 났을 때 번호가 뜨는 위치, 반찬 세팅 순서나 물품 세팅 순서, 메뉴판을 1차적으로 외웠다.
2층에 있는 테이블을 예약석으로 꽉 차 있었기에 기본적인 물품들은 식탁 위에 다 세팅을 해 놨어야 했다. 하지만, 손님들이 도착하고 손님들이 보는 눈 앞에서 제공되어야 하는 것도 있었기에 각 물품들이 어디있는지 외우고, 주문된 메뉴에 따라 준비해야 하는 동선을 외웠다. 포스기에서 메뉴를 찍는 법도 오랜만에 다시 해봤고, 모든 식자재와 추가 재료가 어디있는지, 1층과 2층을 연결해주는 음식 엘레베이터 작동기, 식탁 치우는 방법, 볶음밥을 어떻게 만들어야서 나가야 하는지도 빠르게 움직이면서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그려나갔다.
2층을 나와 부점장님 단 둘이서만 봐야하는 것도 사실 겁났다. 금요일 퇴근시간 마포역 부근 유명한 고깃집의 본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들이닥칠지 예상도 안갔다. 더욱 긴장하고 준비했다. 18시부터 오픈인 줄 알았는데, 18시 20분이 되어서야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마 퇴근을 하시고 이제 슬슬 들어오시는가 했다.
메뉴는 아래와 같았다.
일이 정말 정말 바빴다. 손님들의 식탁에서 벨이 울리면 계속 달려가면서 뭘 한 것 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2층 홀을 내가 다 보고, 부점장님은 2층 부엌에서 고기를 손질하셔야 했기 때문에, 정말 너무 바빴다.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미나리 볶음밥을 준비하는데, 볶음밥을 부엌에서 만들고 손님 테이블에 가서 솥뚜껑에다가 그대로 부어야 하는데, 한 테이블에서 빨리 붓다가 위에 있는 잘게 썬 미나리 일부가 손님 앞접시에 떨어졌었다. 여성 4인이 있는 테이블이었는데, 다들 엄청 웃으셨다.
거기서 손님이 드립으로 "오 미나리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고, 감사해요" 이렇게 말씀하셔서 "아이고, 죄송합니다.ㅎㅎ 미나리 바로 가져다 드릴게요!" 했다. 다행히 유쾌하게 받아주셔서 감사했다.
그렇게 계속 볶음밥을 주걱으로 볶고 있는데 볶고 있는걸 보시면서 한 여성분께서 "이거 고기기름 그대로 볶아도 괜찮은거에요? 먹어도 안 죽나요?" 이렇게 말씀하시길래, 나는 계속 볶으면서 "네, 괜찮아요..ㅎㅎ 죽지는 않을거에요!!" 이렇게 말했나 암튼 엄청 웃기게 말했어서 앞에 친구분이 엄청 웃으시면서 "야 안죽어 안죽어" 이랬던 게 기억난다.
나중에 그 상황을 되짚어 봤는데, 손님 입장에서는 진짜 어이가 없었을 거다. 기름이 많이 나와서 불판을 좀 닦은 다음에 볶아달라는 의미인데, 거기에 대해서 웃으면서 그냥 대답을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맛있게 드세요~" 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때는 너~무 바빴어서 기계적으로 리액션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테이블이 미나리를 추가로 시키셨을 때, 좀 양을 많이 해서 드렸더니 좋아하셨다.
아래는 마감 때 잠깐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이 갤러리에 있었다.
근데, 이 때 생각하면 정말 재밌었다. 뭔가 퇴근을 하고 구두를 신고 아르바이트 하는 내 모습이 웃기면서도 갓생 사는 것 같아서 오히려 도파민이 나왔다. 손님들이 맛있다고 하면 괜히 기분 좋고, 계속 열심히 하다보니 어느새 시간은 11시가 넘었었다.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봤지만, 진짜 이 날 시간이 정말 빨리 간 것으로 기억한다. 쉴 새 없이 바빴고, 그 만큼 보람찼다.
부점장님이 냉면 해먹을까? 해서 난 때마침 너무 좋았다. 진짜 '냉면'이 땡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11시가 넘어서야 늦은 저녁밥으로 냉면을 먹었다. 몇 테이블이 안 남았어서 마저 응대를 하고, 밀린 컵 설거지와 그릇 설거지를 조금 한 다음에, 퇴근을 했다. 부점장님이 다음에도 꼭 봤으면 좋겠다고, 일 잘한다고 칭찬해주셔 뿌듯했다. 집가니까 거의 12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나는 그렇게 24시간 중 18시간 정도를 깨어 있는 하루를 보내게 됐다.
이렇게, 내 첫 고깃집 아르바이트이자 투 잡의 시작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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