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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산역/가양역] 20살, 재수를 마치고 호텔 분양소 알바를 하다

letzgorats 2023. 8. 23. 11:25

재수생으로서 수능을 마치고 했던 호텔 분양소 알바에 대해 글을 써볼까 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처럼, 수능이 끝나고 알바를 구하고 있던 도중, 친구 해일이가 같이 알바를 하자고 제안해서 함께한 알바였다. '호텔 마리나베이'의 분양소 알바였고, 하는 일은 구체적으로는 적혀있지 않았지만, 친구랑 같이 하는 알바라고 하면, 두려울게 없는 나이였다. 그렇게, 집으로부터 버스를 타고 20분정도 달리다보면, 가양역 부근의 알바하는 장소가 나왔다. 매일매일 출근했고, 두 달 가까이 한 것 같다.

 

 

출근을 하면, 주차장 구석에 있는 자그마한 통로에 있는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 난로 1개와 의자 5개 정도 들어가는 컨테이너 공간에서 호텔 마리나베이 유니폼인 빨간 패딩으로 갈아입고 바로 일에 투입됐다. 해당 패딩은 개수가 별로 없어서 일찍 온 사람들이 입을 수 있었고, 그렇게 따뜻하지도 않아서 나는 보통 내 패딩을 입고 일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내 패딩 색깔도 떡볶이처럼 새빨간 색깔이었고, 평소에 입는 패딩이라기보다는 축구하러 갈 때나, 일을 할 때 입었던 게스통통 패딩이었기 때문에, 더러워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은 크게 없었다.

 

 

처음에 내가 맡은 업무는 주차장 안내요원 업무였다. 주차장 경광봉을 들고, 차를 가지고 오는 손님을 안내하는 단순한 업무였다. 하지만, 쉬운 업무인줄만 알았던 것이 이틀 차에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추위때문이었다... 12월의 날씨는 정말이지 너무 추웠다. 한 시간, 두 시간 밖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계속 서 있어야 하는 것이 문제였다. 따분한 줄 만 알았던 업무가 알고보니, 다른 사람들이 가장 기피하고 싶은 업무였던 것이다.

 

나는, 알바생들 중에서 막내였고 어린 나이에 그 때의 알바 분위기 상, 같이 알바하는 형들이나 팀장님과 부팀장님께 감히 건의드리지 못했던 것 같다. 보통 주차장 안내 업무는 2시간 단위로 돌았는데, 휴게시간이 다가올 수록 더 추워졌고, 나중에는 근무를 나오자마자 작은 휴게방에 있던 난방기가 생각날 정도였다. 일주일 내내 주차장 알바만 하니까, 팀장님도 결국 다른 업무를 시키셨다. 추측하건대, 새로 들어온 알바 혹은 다른 알바 막내에게 주차장 알바를 시키신 것 같았다. 아마 내가 다른 업무로 옮겨진 이유도 새로운 알바생이 들어와서였을 때부터였다.

 

그 다음 시키신 업무는 좀 색달랐다. 분양소 알바 특성상 워낙 잡업무가 많고 정해진 일보다는 알아서 찾아서 필요한 것을 하는 느낌이었다면, 다음 업무는 완전 고정직이었다. 바로, '오뎅팔기'였다. 실내에서 업무를 할 수 있을까 했는데, 이제는 아예 분양소 앞에서 대놓고 오뎅을 팔아야 하는 실정이었다. 알바하는 인력이 꽤나 많았는데, 돌아가면서 일을 하되, 내 주종목은 오뎅팔기가 된 셈이었다. 

 

이제는 루틴이 8시까지 출근하면, 포장마차 안에서 오뎅국물을 내기 위해 쯔유를 푸는 것이 내 루틴이었다. 근데, 진짜 "쯔유"소스 하나만 잘 넣고 끓여도 오뎅국물 맛이 났다. 나중에는 꽃게랑 양파도 넣는다. 그럼 그냥 신기하게도 오뎅 국물 맛이 났다. 그렇게 주차장 안내원에서 오뎅파는 사람으로 이직을 했는데, 확실히 재미를 따지면 후자가 더 나은 선택지였다.

분양소를 오고 가는 다양한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었고, 실내에서 일하시는 분양소 직원분들이나 투자자처럼 보이는 양복입은 사람들도 항상 오뎅을 먹으러 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런저런 얘기를 할 수 있었는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군대는 빨리가라'였던 것 같다. 근데,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당장 재수를 끝내고 대학교를 들어가지도 않은 한국 남학생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이 말이 맞는 것 같다.

 

손님이 안 보이는 뒷 칸에서, 오뎅을 막대기에 꽂는 작업은 재밌었지만, 물집이 종종 났다. 하루 종일 오뎅을 적어도 1000개씩은 만들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오뎅을 겁나 먹는다. 추운 겨울인데다가, 공짜 오뎅이면 나라도 마다하지 않을 것 같다. 막대기를 지탱하고 X자로 꼬으면서 오뎅을 꽂아야 하니까 오후되면 물집이 안 날 수가 없는 노릇이였다.

 

이렇게 계단을 올라가기 전 입구 바로 앞에서 오뎅을 팔았는데, 이 덕분에 추위는 주차장 알바보단 나았지만, 손이 얼얼한 트레이드오프를 겪었다. 일단, 이 업무를 하면서 최악의 손님을 뽑자면, 만든 오뎅을 락앤락 통을 가져와 국물과 오뎅을 싸간 많은 할머님들이다. 이해는 됐다. 계속 다시 만들어야 해서 힘들었을 뿐이다. 어르신들이라 말도 못하고 오히려 맛있게 드시라고 제지를 안했더니, 결국 나중에는 동네 할머니들까지 모셔오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할머님들의 계속되는 강탈아닌 강탈은 며칠째 계속됐고, 결국 팀장님의 눈에 띄여 중단되긴 했다.ㅋㅋ

 

 

중간에, 똑같은 재수생활을 하고 알바를 하게 된 여학생이 들어오게 됐는데, 같이 오뎅을 파는 업무에 배정됐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친해지려 하는데, 갑자기 여학생 업무가 바뀌게 됐다. 분양소 내부에 있는 카페에서 일을 하라는 지시였다. 나도 실내에서 일을 하고 싶었는데, 그저 다시 오뎅을 팔 뿐이었다.ㅠ

 

이런 에피소드도 있었다. 8시까지 출근인데, 하루는 침대에서 일어나보니 8시 50분이었다. 친구 해일이한테 부재중 통화가 엄청 와 있었고, 나는 진짜 어떻게 해야할지 감도 안 잡혔다. 해일이한테 전화를 하니까 팀장님이 많이 화가난 상태인데, 일단 얼른 오라고 해서 부리나케 버스를 타고 갔다. 진짜 가면서도 엄청 무서워서 어떻게 해야하나 안절부절 못했다. 알바 장소에 도착한 뒤에, 조용하게 동태를 살피다가 마주치는 모든 알바생 형들한테 죄송하다고 하고 다시 오뎅을 만들기 시작했다. 근데, 출근도장을 안 찍었기에 팀장님께도 말씀을 드려야 했지만,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나갈지 깜깜했다.

 

팀장님을 마주친 순간, 정말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조용히 1대1 면담이 시작됐다. 결론은, 엄청 깨지게 됐고 오늘 하루 일당은 무급으로 일을 하라고 말씀하셨다. 어린 마음에, 대답은 알겠다고 하고 다시 업무를 보는데, 조금 억울했다. 그래도 추운 날씨에 일을 하는데, 1시간 정도 지각했다고 해서 12시간동안 일한 하루 일당을 안 주는 것이 마음 한켠으로는 팀장님이 미웠다. 그렇게 조용하게 내 루틴대로 오뎅을 꽂고 있었는데, 알바 형들이 팀장님이 뭐라고 했냐고 하면서 막 물어보러 왔다. 오늘은 그냥 일당 없이 일하기로 했다고 말했더니 그 순간, 그런게 어딨냐고 형들이 다들 위로해주셨다. 그래도, 위로를 받으니까 아까 혼났던 것이 좀 나아졌다.

오후에, 그 소리가 팀장님 귀에 들어갔는지 잠깐 팀장님이 부르셨다. 그러더니, 일당 없이 일하라고 한 건 미안하다고, 출근 1시간 늦었으니까 '반'만 주는 걸로 합의를 봤다. 없는 돈이 생긴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지금 몇 년이 흘러서야 이런 에피소드를 생각하니, 지각은 정말 잘못된 것이 맞지만, 추운 겨울날 밖에서 오뎅을 파는 20살한테 12시간 일 시키고 6시간치 일급만 주다니,,ㅠㅠ 너무하다.

 

 

하루는 분양소 내부에서 일 한 적이 있었는데, 카운터에서 영화 후궁에 까메오로 나온 배우분도 알바를 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부팀장님께서 엄청나게 좋아했었는데, 이유는 알 것 같지만, 말 하고싶진 않다. 팀장님이랑 부팀장님 둘 다 결혼을 안 하신 30대 분들이셨는데, 성격이 조금 감정적이셨던 기억이 난다. 부팀장님은 분양소 내부 카운터에서 알바를 하는 그 까메오 배우분께 우리랑 있을 때만 음담패설도 막 하셨었는데, 들을 때마다 기분이 불쾌했다. 아마 30대 후반이셨는데 카톡 프사부터가 애니였었던 걸 보면, 그 사람이 왜 그랬는지 조금 이해는 됐다.

 

이 외에도, 많은 잡다한 업무들도 다양하게 했다. 출장을 간 기억도 있는데, 그 당시 26살 형이 운전면허는 있지만, 장롱면허 상태인데도, 그 형이 운전하게 된 봉고차를 타게 됐다. 아니나 다를까, 도로에서 달리다가 퉁- 하는 소리와 함께 꽤나 크게 봉고차 옆면을 다른 차에 쓸어버리는 사고도 일어났다. 근데, 웃긴 건 두 자동차 모두 그냥 무시하면서 갔다. 봉고차가 많이 긁혔는데도 말이다.ㅋㅋ

 

 

이렇게, 여러 에피소드도 겪으면서 알바인생의 시초가 됐던 우당탕탕한 느낌의 내 두 달간 알바는 잘 마무리가 됐다. 처음으로 책상이 아닌 사회에서 다양한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던 알바였고, 기억해보니 어리숙한 20살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났던 알바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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